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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역사] 2월 14일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당한 날입니다.

글쓴이 : Vladimir 날짜 : 2014-02-13 (목) 17:39 조회 : 1445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 사진을 보면 왼손의 손가락 하나가 잘려있다.

2월 14일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당한 날입니다.
 
그래서 안중근에 대해 써볼까 합니다. 이 글은 2014년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 겸 안중근 의사의 사형 선고일을 앞두고 쓰는 글임을 밝힙니다.
 
일단 안중근의 어린 시절부터 봅시다. 안중근 의사는 1987년 9월 2일(날짜는 2차대전 종전일..) 황해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소년이였던 안중근은 황해도 관찰사의 요청에 의해 자신의 아버지가 조직했던 산포군에서 동학군 토벌을 하는데에 참여헀습니다. 

이후 1905년, 을사 조약이 체결되고 일본에게 외교권을 뺏겼단 소식을 듣자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여비를 마련하고 상하이로 갔으나 기대했던 현지 유력자들과 천주교 신부들로부터 협조를 거절당했는데 이 시기에 부친상으로 고향으로 돌아왔고 3년상을 마치기 전엔 평남 진남포로 이사했습니다. 거기서 석탄상회를 경영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그 회사를 정리한 안중근은 교육을 해야겠다 느껴 삼흥학교를 설립해 교육운동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황해남도 천주교 계열 학교인 남포의 돈의학교를 인수하고 자신 또한 교사로 직접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1907년에는 서상일의 주도로 펼쳐진 국채 보상운동에 적극 호응, 국채보상기성회에 가입해 회원이 되었고 열심히 활동하여 인정받아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장으로 임명됬지만 그 보상운동도 일본 방해에 의해 실패했습니다.

1907년은 고종 황제가 헤이그 특사에 대한 책임으로 강제로 퇴위당한 후 한일 신협약 체결로 군이 해산되자 의병들이 일어나자 안중근 또한 황해도의 의병에 들어가 일본군과 싸우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계동청년회에 가입하고 그 곳의 임시사찰에 선출됬습니다. 

1908년 안중근은 소수의 의병을 이끌고 경흥을 2차례 공격하여 일본군 수비대를 격퇴했으나 석방한 포로 위치가 노출되 회령 근처에서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패전했습니다. 안중근은 겨우겨우 돌아왔지만 패전에 의해 연해주 한인 사회에서의 입지가 줄었습니다. 

그 해 6월, 안중근은 특파독립대장&아령지구군사령관 자격으로 출정하여 경흥에 주둔하던 일본군을 공격하여 전멸시켰죠. 그리고 안중근은 국내 곳곳에 진공작전을 계획해 감행해 나름대로의 전과를 올렸지만 일본군의 기습으로 또 크게 패전했습니다. 이 때 기습은 다른 의병대원의 반대를 무시하고 혼자 뜻으로 전투에서 잡은 일본군 포로를 국제공법에 의해 석방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계기로 그는 의병의 신임을 잃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새로이 의병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많은 비판 끝에 부대가 해체됬습니다.

1909년, 안중근은 같은 뜻의 동지 11인과 함께 동의단지회를 결성했고 의병으로 재기하려고 노력했고 그는 당시 왼쪽 넷째 손가락의 한 마디를 끊었습니다. 안중근은 이 떄부터 손도장을 찍기 시작했습죠.

1909년 10월 26일, 결정적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토 히로부미(조선 통감)가 러시아의 재무장관과 회담하려고 하얼빈에 올 예정이였는데 그 소식을 들은 안중근은 그를 암살하는데 지원했습니다. 그는 처음에 장춘의 남장춘, 관성자, 도착지인 하얼빈, 채가구 역에서 암살을 시도했지만 자금과 인력 부족으로 계획을 바꿨습니다. 그는 하얼빈에서 공격하기로 했고 채가구역에서 이토를 암살하기로 한 동료 우덕순과 조도선은 러시아 경비병이 눈치채 실패했습니다.

10월 26일, 오전 9시에 이토의 열차가 하얼빈에 도착했고 그는 열차 안에서 러시아 재무장관과 회담한 후 9시 30분, 군대의 사열을 받기 위해 하차했고 사열을 마치고 열차로 돌아가려던 순간 안중근은 권총으로 일곱 발의 총을 발사하여 이토를 사살했고 그 옆의 수행비서관, 하얼빈 주제 일본 총영사, 만주 철도의 이사를 맞췄습니다.

저격 직후 안중근은 "코레야 우라!(Корея! Ура!=한국 만세!)"라고 외쳤고 그는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15가지 이유로 이토를 죽였습니다. 처형 전까지 재판 과정에서 어떤 기세에도 굴하지 않고 그 이유를 당당하게 밝혔습니다.

내가 이토를 죽인 15가지 이유(안중근)

1. 한국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2. 고종 황제를 폐위시킨 죄
3. 5조약과 7조약을 강제 체결한 죄
4. 무고한 한국인을 학살한 죄
5. 정권을 강제로 뺏은 죄
6. 철도, 광산, 산림, 천택을 강탈한 죄
7. 제일은행권 지폐를 강제 사용한 죄
8. 군대를 해산시킨 죄
9. 교육을 방해한 죄
10. 한국인의 외국 유학을 금지시킨 죄
11.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운 죄
12. 한국인이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싶어한다 세계에 거짓말한 죄
13. 현재 한일간에 경쟁과 살육이 끊기지 않는데 태평 무사한 듯 천황을 속인 죄
14. 동양 평화를 깨버린 죄
16. 일본 천황의 아버지를 죽인 죄

내가 이토를 죽인 이유는 이토가 있으면 동양의 평화를 어지럽게 하고 한일간이 멀어지기에 한국의 의병 중장의 자격으로 죄인을 처단한 것이다. 나는 한일이 더 친밀해지고 평화롭게 다스려지면 나아가 오대주에도 모범이 되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난 절대 오해하고 죽인 것이 아니다.

안중근의 체포/수감 소식이 접해지자 국내외에서는 변호모금은동이 일어났고 러시아와 영국인이 무료 변효를 자원했지만 일본인 관선 변호사들의 변호도 허가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안중근은 수감 중에 동양 평화론을 저술했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안중근은 2월 14일 사형을 선고받고 3월 26일 형이 집행됬습니다. 일본은 의병 참모장 중장 자격으로 전쟁 선포의 의미에서 이토를 사살했기에 국제법에 의해 재판해야했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일본의 법대로 재판을 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안중근을 테러리스트라고 깎아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 작지 않은 분노를 느끼며 내일이 발렌타인데이입니다. 그러나 안중근의 사형 선고일이기도 하죠. 이 점도 같이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miso 2014-02-16 (일) 15:21
천황아버지를 죽였네요 이토가 ...
몰랏던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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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adimir 2014-02-16 (일) 23:08
저도 데이터 찾던 중 좀 놀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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